일상 Routine

스펙 대신 인생 경험 쌓는 20대 여행 탐험가들…“쫄지 마!” 21세기 청년 콜럼버스

이글루 리페어 2012. 5. 16. 13:25

3시간 자며 어학연수비 마련…국경에서 무일푼 되자 사막 이틀 종주

권준오, Korea, 27세

메일 주소는 '권똘끼'. 영국에서 한국까지 17개국, 약 2만km를 50cc 바이크로 횡단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체 게바라의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가 떠오른다.

지금까지 나온 바이크 세계일주 기록이 125cc여서 50cc를 택했다는 권준오 씨. 뉴스를 보다 FTA, 신자유주의 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한 그는 '진짜 철학 연구회'라는 동아리에 가입한다.

그리고 평생 단 세 권 읽었던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다. 거기서 '모험을 즐기는 자가 혁명을 일으킨다'는 운명적 문구를 발견한다. 여행을 마친 후 강연과 함께 졸업 전 여러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똘끼, 50cc 스쿠터로 유라시아를 횡단하다>(문학세계사)를 펴낸 권준오 씨를 만났다.

현재 소속은?

여행을 마친 후 올해 1월 외국계 플랜트 기업 국비장학생으로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두 달 동안 인턴을 마쳤습니다. 현재는 수원대학교 기계공학과 05학번으로 4학년에 재학 중이죠. 플랜트 회사가 좋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아직 하고픈 일이 있어 고사했어요.

어떻게 스쿠터 세계일주를 마음먹게 됐나요?

제대 후 맥도날드 배달을 시작하면서부터 계획했어요. 군 전역 후 부모님께 "30대 중반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아무런 소득이 없다면 그냥 고향에 내려와 모시고 살겠다"고 말씀 드렸어요. 영국에서 여학연수를 마친 후 그냥 오기가 아쉬웠어요. 미래계획도 점검하고, 육체적으로 20대를 기념할 수 있는 극한 도전을 해보고 싶었어요.중학교 때부터 스스로 용돈을 벌었다고 들었어요.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어린 시절엔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IMF를 맞이했죠. 그때부터 갖고 싶은 것은 스스로 벌어서 했고, 거기에 책임을 졌어요. 군 입대 전 학원강사로 일하며 모아놓은 돈은 집에 갖다 드리고, 제대 후 1년 동안 2000만원 이상을 다시 모았어요. 3시간만 자고 맥도날드, 학원 강사, 과외, 목욕탕 청소 등 하루에 4가지 아르바이트를 한 결과 연수 비용을 마련했지요.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는 등 스스로 노력한 결과 마지막엔 강사 월급이 1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올랐어요. 가장 즐겁고 보람된 기억이에요.

영국에서 가방 장사와 중고 오토바이 수리를 했다고 들었어요.

학비와 항공권을 제하니 히드로공항에 도착했을 때 100만원뿐이었어요. 영어를 못하니 아르바이트도 두 시간 만에 잘렸습니다. 두 달 간 하루에 18시간씩 공부해 일을 구했어요. 하지만 그걸로 학비가 감당 안돼 중고 오토바이를 사들여 간단하게 수리하고 가격을 올려 되파는 장사를 했지요.

여행 스폰서를 구하려 150여 개 기업에 무작정 메일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상세한 여행 계획, 예산, 스폰서 수칙 등을 써보내고, 그 중 세 군데에서 연락을 받았는데요, 가장 인상 깊었던 스폰서 회사는 '우리 역시 도전과 창의 정신으로 성장해온 기업이므로 권준오님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보낸 한국의 헬멧기업 HJC였어요. 후원 받은 경비는 총 380만 원(3개 기업, 네티즌 도움) 정도이고 총 여행 경비는 정확히 372만70원이었어요. 주로 텐트에서 먹고 자고, 현지 어학원 등에서 중간중간 경비를 지원받아 결국엔 경비가 남았어요.

바이크 사고는 없었나요?

긴장해서 그런지 다치진 않았어요. 눈 덮인 알프스산맥을 지나면서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고 50도가 넘는 이란의 사막에서도 일사병에 안 걸렸거든요. 바이크가 고장 나면 직접 고쳐 썼어요. 파리에서 타이어가 펑크 났을 때는 예비 타이어가 없어 주유소까지 수 km를 끌고 가야 했지만요.

여행 중 큰 사건 사고가 있었다면?

위험은 사람마다 상대적이에요. 파키스탄에서 수백 년 만의 대홍수로 도로 곳곳이 파괴되고 잠겨버려 외줄 하나로 강을 건너거나 산사태를 직접 걸어 오르내려야 했을 때는 좀 놀랐지만요. 중국에서는 48시간 동안 입석 기차 여행을 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고 중동에서는 경비가 떨어져 블로그에 SOS를 쳐서 간신히 네티즌의 도움을 받았어요.

여행 중 아버지의 부음을 접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영국 행을 감행했을 당시부터 위독한 상태셨어요. 유라시아 횡단 도중 인도에서 소식을 들었지만 3일 안에 귀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3일 안에 오지 못한다면 그냥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끝까지 마무리 하고 오라'고 하셨어요.

여행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전날 술자리를 인연으로 공짜 경비행기를 타고 알프스 만년설을 가까이서 구경했던 일입니다. 제 여행 소식을 온라인으로 계속 알려주고, 먹여주고 재워준 터키의 스쿠터 여행 동호인들도 기억에 남네요.

앞으로의 계획은?

제 꿈은 어떤 것이 진정 평등한 조직인지 실험하고, 직접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제 회사를 만들어야겠죠. 당장 시작하지 않고 차근차근 경험을 쌓을 생각입니다. 남들은 유라시아 횡단을 하고 책을 낸 것이 제 '스펙'이라고 하더군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자연히 스펙이 따라옵니다.

모험가 권준오의 바이크 여행 규칙 셋

첫째

어딜 가든지 무조건 헬멧을 착용하기! 오토바이 사고는 외곽보다 도심에서 많이 일어난다.

둘째

오후 7시가 지나면 무조건 잠자리 찾기! 야간주행은 그만큼 위험하다.

셋째

누군가가 멈추라고 하면 무조건 멈추기! 중동에서는 도둑이나 산적이 총을 지니고 있다.

유튜브에서 더 유명한 이집트 민간 평화전령사

아흐메드 하가고비치, Egypt, 27세

아흐메드 하가고비치의 Life Rule

1 무서움은 실제가 아닌 환상이므로 극복해야 한다.

2 삶은 어디를 택하든 양쪽 모두 리스크가 있다.

3 인생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4 꿈에 대해서만큼은 현실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흐메드 하가고비치의 좌우명

나는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태어났다.

이집트 국기를 들고 춤추는 모습으로 유튜브에서 더 유명한 아흐메드 하가고비치(Ahmed Haggagovic)는 이집트 모험가이자 여행가다. 유럽, 아프리카, 미국, 중국 등을 거쳐 지난 4월 한국을 찾은 그는 남미 아르헨티나 대통령 집무실에서도 춤을 추던 인물. 춤은 자유의 메시지다. 지금은 춤 대신 이집트 국기로 자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는 이집트 명문 아인 샴스 대학교에서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브라질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재원. 영어, 아랍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한 아흐메드는 학교를 졸업하던 2007년 전 세계 200개 국가를 돌며 자국의 국기를 들고 전 세계에 평화를 전하기로 마음 먹는다.

현재까지 83개국 166개 도시를 방문한 아흐메드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받은 기념품이 든 집채만한 가방을 갖고 다닌다. 그리고 아이들만 보면 가방에서 작은 선물들과 이집트 국기를 꺼내 들려준다.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중국, 일본 등 200개국을 다 도는 것이 목표. '여행'과 약혼했다는 그의 손가락에는 약혼반지 대신 러시아 정교회, 중국 등 전 세계 친구들이 선사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민간 평화전도사로 80여 개국을 돌아다닌 이유는?

전 세계 국가들을 돌면서 이집트 이야기를 전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브라질 대통령도 만났고, 2009년에는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는데 그 때 그가 이집트를 위해 자유와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전하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경비는 어떻게 감당하나요?

관광청이나 항공사, 기업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일을 해서 모아둔 돈으로 충당합니다.

한국의 4.19 국립묘지에서 눈물 흘리는 영상을 당신의 페이스북에서 봤어요.

이집트 국민들이 떠올랐어요. 한국에선 혁명을 위해 몸바친 이들을 위해 이런 기념 공원도 마련하는데, 우린 혁명이 끝난 지 1년 5개월이 넘었지만 그렇게 못하고 있으니까요.

이집트 국기로 자유, 행복, 평화 세 가지를 전파하는 이유는?

자유, 행복, 평화는 자기애와 이집트에 대한 사랑 그리고 국경 없는 세상을 의미해요. 이집트 국기의 빨강은 '혁명'을, 화이트는 '평화'와 '밝은 미래'를, 검정은 '땅'을 의미합니다. 국기 중앙에는 아랍의 상징 독수리가 그려져 있는데 종교와 인종, 언어를 뛰어넘어 이집트 인이 어떻게 전세계를 국경 없는 하나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당신이 전세계를 떠돌기로 결심했을 때 가족, 친구, 주변인의 반대는 없었나요?

어머니는 반대했고, 아버지는 찬성했어요. 아들이 좋은 직업과 결혼도 마다하고 전세계를 떠도는 것이 싫었던 거죠. 그러나 부모님께 '나 이거 하다 죽을 거야'라고 정식으로 밝혔어요.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하는 일과, 많은 세계인들이 제 메시지를 받고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도 생각이 바뀌셨지요.

여행 중 가장 아찔했다거나 위험했던 기억?

시베리아 특급열차가 정차했을 때 잠깐 내려 촬영을 했는데, 갑자기 기차가 출발했어요. 정차 시간이 2분이었던 거죠. 영하 49도의 날씨에, 사진가와 함께 기차를 향해 달렸어요. 거구의 사진사는 너무 고생을 해서 이 여행에서 29kg이나 살이 빠졌지 뭐예요. 여행하면서 돈을 뺏으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다지 나쁜 기억은 없어요. 10명 중 9명은 좋은 사람이죠. 원래 다혈질이고, 두려움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편입니다.

지난해 이집트 민주화 운동이 당시에게 끼친 영향은?

나는 27년 평생 무바라크라는 단 한 명의 이집트 대통령을 봐왔어요. 그리고 그것은 기분 좋은 경험이 아니죠. 그는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믿고 있어요. 그때 나는 타흐리르 광장에서 100% 진심을 다해 사람들을 응원했습니다. 무슬림이든 기독교든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혁명으로 모두가 하나가 됐어요. 이렇게 하나가 된 것만큼 이집트가 위대했던 적은 없습니다.

이집트는 5월 말 30년 만에 대선을 치루는데,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요?

벌써 혁명을 일으킨지 1년 5개월이나 지났으나 아직 많은 것이 바뀌지는 않았어요. 여전히 무바라크 대통령 시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요.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을 바꾸는 것은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가 누구인지 먼저 생각하고,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처럼 권력과 지배를 사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고, 이집트를 더 좋은 나라로 만들어야 해요.

세계일주는커녕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들어간 후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 20대 한국남자들의 목표에요.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서움을 극복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안돼요. 그건 죽어있는 거죠. 꿈에 대해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모두가 옳아요. 그러나 나는 인간은 지질(Geology)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압축되기 때문이죠. 그것이 계속 압축되면 언젠가는 폭발하게 되겠죠. 많은 이들이 내 메시지에 공감한다면 결국 이뤄질 거라 생각해요. Life is risky.

세계 탐험계의 젊은 피

제임스 후퍼(James Hooper), UK, 25세

모험가 제임스 후퍼의 Life Rule

1 지금 당장 행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2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반복적 일상을 피한다.

3 위 사항을 사람들과 공유, 긍정적인 효과를 퍼뜨린다.

모험가 제임스 후퍼의 좌우명

Fortune favours the brave. 행운은 용감한 자를 따른다. "Whatever you do, or dream you can do, begin it. Boldness has genius, power and magic in it." -Von Goethe 당신이 꿈을 꾸든 말든, 시작부터 해야 한다. 무모함은 천재성과 힘과 마법을 가져다 준다. -괴테그는 세계 탐험계에서 이미 유명한 인물이다. 19살에 최연소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하고, 20살에 북극에서 남극으로 무동력 종주하는 'pole to pole' 프로젝트를 감행해 2008 내셔널지오그래픽 올해의 탐험가로 선정된 괴물 같은 남자다. 캠브리지 대학에 합격한 상태였지만 평생 살아온 영국이 지겨웠고, 영어강사 친구에게 들은 다이나믹함에 반해 2년 전 한국으로 와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는 탐험계의 젊은 피, 제임스 후퍼를 만났다.

경희대 지리학과에 재학 중인데, 요즘 일상을 알려주세요.

좀 더 다양한 문화와 지형, 환경을 공부하기 위해 지리학과를 선택했어요. 벌써 2학년이라, 한국의 대학생활에도 많이 적응했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어요. 요즘은 단기간 챌린지 프로그램으로 몸을 단련 중이고, 북극에서 남극까지 무동력 횡단을 시도했던 제 도전을 소재로 <제임스 후퍼의 POLE TO POLE>이라는 다큐멘터리도 제작 중입니다. 이와 함께 한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올 여름 스웨덴에서 카누와 캠핑을 통한 영어 모험 프로젝트도 함께 준비하고 있어요. 저와 에베레스트 등정을 같이 했다가 운명을 달리한 친구를 추모하기 위한 유럽 자전거 여행도 계획 중인데, 모금된 기금으로는 아프리카 우간다에 학교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에베레스트 최연소 등반, 북극에서 남극 무동력 횡단 등 목숨을 건 모험에 나서는 이유는? 생명 보험은 들어놨나요?

어느날 신문에서 에베레스트 산 사진을 보고 생각했어요. '와, 멋있다. 당장 가자'. 위험을 한번이라도 극복해낸다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위험한 도전을 할 때마다 생명보험이 아니라 모험보험을 들었습니다. 모험보험이란, 제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헬기나 구조요청 시 그 비용을 부담해주는 보험을 말합니다. 가벼운 동상에 걸리거나, 도전을 끝내고 맹장수술을 받으러 간 적은 있지요. 보통 사람과 체력은 비슷해요.

2008년 북극에서 남극까지 4만2000km를 400일 가까이 걸쳐 횡단했는데, 그린란드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타고 있던 배가 뒤집혀 30m의 파도와 시속 120km의 바람과 싸웠죠. 망망대해에 있어서 아무도 우릴 구해줄 수 없었습니다. 바다 얼음이 너무 얇아 친구가 물에 빠졌는데, 영하 2도의 물에 4분이나 있었죠. 4시간 동안 의식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런 위험을 예상했기 때문에 후회하거나 크게 당황하진 않았습니다. 죽을 때는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데 그런 장면이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생존하려 애썼어요.

친한 친구가 알프스 등반 도중 목숨을 잃었는데, 그 일이 당신의 도전 인생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

저와 많은 도전을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 할 친구였기 때문에, 당분간 탐험 활동을 할 수 없었어요. 스폰서도 구하지 못했고요. 친구가 죽고 나서 제 미래도 사라진 듯 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신감도 회복됐지요.

위험한 모험을 통해 깨달은 점은?

신중히 기획하고 많이 준비하면 위험하지 않다는 것과, 인생도 이와 같다는 사실요. 에베레스트에 올라야겠다고 마음 먹은 16살부터 3년 동안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등반 교육도 받고, 체력도 단련했지요. 삶 역시 한 단계 한 단계 준비하면 보다 쉽고 안전하게 인생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한라산에서 남산까지 조정, 마라톤 등을 이용한 무동력 종주에 도전했다고 들었어요. 600km가 가까운 거리를 99시간 30분 동안 주파한 건데,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도전 3일 전부터 제주에서 조정연습을 시작했는데 파도가 세고 바람이 심해 배에 균형을 잡으려면 다리에 계속 힘을 주고 있어야 했어요. 무리한 연습에다, 다리의 긴장을 풀 겨를도 없이 바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첫 35km를 조정을 타고 이동하던 중에 해경선박이랑 부딪쳐 배도 고장 나 버렸어요. 요트로 바꿔 타고 이틀 내내 같은 자세로 서 있다 보니 다리 상태가 더 악화돼 자전거로 480km를 이동할 때는 통증이 극에 달했죠. 매우 힘들게 도전을 끝마쳤어요.

당신의 모험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pole to pole 때 2008년 대지진 직후 칠레에 도착했는데, 집과 부인을 잃고 3명의 자식들과 텐트 하나에서 생활하던 이재민 아저씨가 기억납니다. 누가 봐도 최악의 상황인데 '살아있는 것이 다행'이라며 열심히 살려는 모습에 무척 감명을 받았죠.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올해는 길고 큰 도전은 없지만, 자전거 여행, 마라톤, 철인 3종경기 등 운동에 전념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제 경험을 바탕으로 도와주고 싶습니다. '아이디어 나무'라는 컨설팅 회사를 만든 것도 그 일환이에요. 연령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타인과 공유하고 도움을 주는 회사죠.

1학년부터 경쟁에 내몰리는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당신의 모험은 배부른 소리로 들립니다. 그들을 위한 조언은?

한국 학생들은 정 많고 배려를 잘하지만 너무 걱정이 많아요.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부모님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취업을 이유로 너무 공부에만 매진하고 있어 다양하고 많은 것을 경험하지 못하죠. 만약 그들이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그 삶은 잘못된 것이며 당장 바꿔야 해요.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을 찾아 실행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날 즐겁게 만드는 일'로 다가옵니다. 고액 연봉만이 성공이 아니에요. 지금 '당장'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세요.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28호(12.05.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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